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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숲”
무엇이건 빼곡히 늘어서 있거나 쌓여 있으면 숲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내 작업은 숲이라는 소재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무들이 많이 있는 숲, 빌딩 숲이 나의 주요 환경이었다. 그런 복잡하고 하나로 이야기하기 힘든 숲이 내게 와 닿은 것은 내면의 복잡한 생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리의식, 유교의식, 현대를 살아갈 생활양식, 욕구불만, 내 얼굴에 씌어진 여러 가면들,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해 가는 부자연스러운 삶의 모습 등이 머리속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나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비교적 자신의 스타일데로 잘 말하고, 자기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에 비하면 난 좀 타인 중심적인 생각, 역할에 대한 책임 등으로 둘러 쌓여서 사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강했고, 지금의 내 삶이 나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또다른 어떤 내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탐구를 오랜 시간 했었다.
그러던 40대 중반 어느 순간에 내가 날 보게 되었다.
머리속은 하루 종일 인생에 대한 의문과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내 몸은 하루의 대다수를 생계를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의 패턴을 버릴 수도 없었다.
한심한 내 삶을 또렷이 확인한 그 순간 우리집 강아지가 생각이 났다.
우린 그녀석을 반려견이라 생각하고, 나를 마중 나오는 그녀석을 사랑하지만, 그녀석은 나에게 밥을 얻어먹기 위한 일 이였는지 모른다는, 숲 속에 곤충들도 하루 종일 살기위한 행위를 한다.
사자도, 호랑이도…. 심지어 나무를 봐도 그렇다. 봄이 되어 비라도 오면 나뭇잎을 만드느라 정신없고, 그 후에도 겨울이 오기전에 미친듯이 광합성을 하며 자신의 본채인 나무 둥치를 키우는데 모든 힘을 다 쏟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아무 말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다.
생이란 생로병사를 피해갈 길이 없다.
단지 그 과정에서 나름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난 지금이 내가 아닌 그 어떤 내가 있을 것이라는 공상에 빠져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이라는 후회와 함께 지금까지 생계와의 전쟁을 해온 나의 과거사가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안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복잡한 생각, 그 치열했던 생계와의 전쟁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고 날 만드는데 반드시 겪어야 할 일들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난 내 삶을 사랑한다.
과거의 삶과 오늘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내일도 같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치열한 저 숲의 생명감을 알겠고, 복잡함이 풍요로 보여진다.
난 그 숲 속의 세월을 들어내는 많은 가지, 잎, 꽃 등을 내 작품세계에 선으로 점으로, 그리고 감성으로 다시 담아내려 한다.
인생의 숲에서 선을 긋고 물감을 뿌려 대고 그리고 그곳에 쨈을 바르는 달콤함의 기대감으로 생의 미래를 맞이해 간다.
무엇인지 모를 ‘비밀의 숲(secret garden)’에서 인생을 알게 한 ‘운명의 숲(destiny)’으로 그리고, 치열했던 지난시간을 생각했던 ‘치열한정원(fierce garden)’으로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숲 속에 각자 홀로 서고 있는 생명들이 고독감을 알게 되어 ‘관계로부터 자유’라는 작업을 하고, 이제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나의 길을 그저 즐겨가는 지금이 천국인 듯하여 ‘천국의 숲(haven`s forest)’을 제작하고 있다.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우울해 하던 찌질 한 나 에서 삶에 순응하는 자유로운 나이길 바라며 오늘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