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오늘 새벽을 당신에게 보내줄게요. 어이없는 문장인 줄은 알지만,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I'll send you today's dawn this afternoon. An absurd sentence I know, but you know what I mean."
영국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아이폰으로 요크셔 해안에서 본 새벽의 어스름을 그려 친구에게 메시지로 보낸 글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머물고 있는 장소의 이미지로 보고 느낀 새벽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나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배경이 되는 현실 속 공간에 대한 인상을 페인팅으로 재현하는 이 흥미로운 방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객관적이고 보다 추상적 개념인 ‘공간(space)’을 함께 공생하며 성장해 가는 유기체적 존재로 인식하고 그 공간에 경험을 투영하여 개인의 주관과 특수성이 부여된 ‘장소(place)’로 기억하는, 이른 바 ‘공간이 장소가 되는 과정’에 관해 탐구해왔다.
한겨울임에도 햇빛이 투명하게 일렁였던 스페인의 어느 고요한 작은 마을
체코 프라하 현지에서 산 옷을 입고 성곽을 따라 올라가 본 경사진 주황 지붕과 연둣빛 나무들
시원한 바람과 수평선 아래로 넓게 퍼진 윤슬과 길고양이가 반겨준 프랑스의 선인장 공원
낯선 언어로 시끌벅적한 배 너머 파란 유리처럼 반짝거리며 강에 비춰지는 싱가포르 빌딩숲
우연히 마주친 도시나 마을의 이러한 모습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으로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 곳들의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여운이 남아있는 동안 수집한 사진, 드로잉, 영상, 메모, 사운드들을 공감각적으로 연결 짓고 재구성하여 새롭게 화면을 채워 확장시킨다.
이렇게 공간화가 진행된 기억의 장(scene)은 해당 공간이 장소로 변환되는 찰나를 담은 쨍한 색채를 차곡차곡 겹쳐 그린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건축 구조물들, 더불어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푸르른 자연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 부분마다 어울리는 렌티큘러(lenticular)나 사진, 잡지 조각을 잘라 붙이거나 얇은 붓과 오일파스텔 등의 재료로 세세한 표현들을 더해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서사적 장소를 이루게 된다.
층층이 쌓인 여러 공간 이미지에 더해지는 그 날의 날씨, 옅은 소음과 노래, 옆에 있었던 누군가의 말소리와 표정, 코를 스치던 냄새와 같은 구성 요소들.
결국 나는 그 장소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응시하고 캔버스 위로 옮겨 적고자 작업해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