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아주 오래 전, 25~30년 전, 나는 이렇게 표명했다. “진정으로 예술분야에서 끊임없이 움직임이 있는 곳이 동양이다”라고.
백남준의 세상을 압도하는 독창적인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특히 한국이 그러하다고.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얼마 전 강창열이라는 어느 장르에도 분류할 수 없는 한 독창적인 한국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현대적이지만 태곳적 한국의 깊은 뿌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 문양, 장식적 모티브, 돌 또는 왕궁의 기왓장에 새겨진 상징적인 도안, 과거역사적 기념물 안에 새겨진 꽃들과 동물들의 문양, 옛날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샤머니즘(역주: 원시종교의 한 형태)의 한 장면, 등등에서부터 그의 그림은 시작된다.
캔버스로 옮겨지기 이전에 우선 컴퓨터로 다듬어 지는듯한 강창열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법칙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진행과정을 보면, 달리(Dali) 또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것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안에서 드러나는 조형적 세계는 이상스럽기도, 비논리적이기도, 뜻밖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인 그의 지적 요소들이 이웃해서 절묘하게 조합되어있다. 우리들은 그 소재들의 조합, 파괴, 재조합이 얼마나 수없이 반복되어진 것인가를 간과해선 안 된다.
시간(역사)속에서 발견되는 영적이고 심미학적인 것이 모두 집결되어 그의 그림에서 다시 재현된다. 인간적인 지상에서의 삶이 그대로 묻어서 흘러온 역사, 즉 3차원적인 인간의 공간의 개념에 4차원적인 시간의 개념을 더한 것이다.
영혼이 담긴 이미지 혹은 몽상적인 그의 그림 안에는 열려진 창문이 있고, 그 창문 밖으로 아주 가까이 닿을 듯 느껴지지만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듯한 작가의 세계가 보인다.
문학의 장르 중 시에서만 표현되어 이해가 가능한 단어들처럼 그의 그림은 마치 우리인간의 현실의 삶과 닮아 있는 듯하다.
강창열의 작업 안에서 소재들의 필연적인 구성은 거의 투시력의 경지에 오른 작업과정이 요구되며, 그렇게 완성되어진 그의 작품은 비로서 시의 구조를 파헤치듯 조금씩 음미된다.
‘시인’ 강창열, 그의 작업과정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위한 하나의 기념적 행위라 볼 수 있다. 그의 기억 속에 은닉된 이미지들의 베일들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몽상적 이미지들을 하나의 형태로 재현하면서, 그리고 그의 영혼 안에서 그의 유년시절과 기꺼이 재회하면서.
꿈의 영역과 강창열의 작품은 굉장히 비범하고 독특하다. 한국인의 뿌리가 그대로 묻어있다. 그리고 노자의 사상과 닮은 이 한 예술가의 영혼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