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나의 작업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자음과 모음의 집합체는 나에게 어쩌면 하루일 수도 있고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시공간을 넘어 선 여러 기억의 덩어리일 수도 있다. 이는 나에게 하나의 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한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무작위로 축적된 자음과 모음의 파편들은 개인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말, 글, 그림, 사진, 영상, 음악, 관계 상황 등과 연관되어 특별한 무엇으로 다시 떠오르곤 한다.
이러한 조형적 시도는 수년간 반복되며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탐구하고 있다. 초기에는 어떤 특정 이미지나 순간을 그대로 반영하는 재현적 시도도 해보았고, 감각적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추상적 표현도 해보았고, 단순한 색을 이용한 미니멀한 작업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습관이 생겼으며, SNS (눈)를 통해 현재의 기억층 연결시키는 경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 했고, 그것은 자음과 모음의 무덤 같은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 (1859~1941)은 습관적 기억과 이미지적 기억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는데, 습관적 기억이란 신체적 기억이며 반복과 현재성(지금 하는 기술, 습관 ,동작)등의 외부 세계의 적응하는 기능적 기억이라 하였다. 반면, 이미지적 기억이란 표상의 기억으로 개인적 사건, 시간성, 우발적, 즉 순수 기억이라 칭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기억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현실적 지각의 요인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기억에 관한 개념에 깊이 공감하며, 결국 인간의 삶에서 기억이란 어쩌면 삶의 모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또한 무의식의 기억이 만들어 낸 시각적 산물이라 생각한다. 베르그송의 논리에 의하면 그림이란 신체적 기억과 이성적 기억의 혼합으로, 이성적 기억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신체적 기억인 몸짓으로 표현하여 시각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내면에 있는 기억의 이미지들을 지층에 쌓여진 퇴적된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강렬했던 기억은 그 이미지를 또렷하게 유지하곤 한다. 나는 이러한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것을 화면에 묶어두는 행위의 연장으로써 작업에 임한다. 특히 유명한 셀리브리티들을 소재로 그리는 인물시리즈는 나의 삶에 영향을 준 캐릭터들로 개인적 우상의 기록과도 같으며, 이를 통해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감성과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각자의 구체적인 기억과 생각은 다르지만 언제나 공통된 보편적 공감대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우상화 작업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으며 기억의 되새김질과도 같다. 미학적 순수성보다는 개인적 감성과 서사에 중점을 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시도하고 있는 색다른 표현방식으로 부조(반입체) 작업이 있다. 초기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파라핀을 이용하여 다양한 크기와 색상으로 캐스팅한 후 그것들을 금속판 위에 불규칙적으로 배열할 후, 금속판 아랫부분을 토치나 열판 같은 것으로 가열하여 글자들이 열에 의해 녹으면서 생기는 우연적 효과를 강조하였다. 그때의 결과물은 마치 ‘기억이 녹아들 듯’ 우연적 효과가 극대화 되며 희미한 기억에 대한 의미를 표현하는데 적합하였다. 하지만 작업 완성 후, 시간이 경과하며 생기는 파라핀의 균열로 인해 현재의 작업은 좀 더 조각에 근접한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조각적 형태의 시리즈들을 통해 아주 먼 기억이나 감정 보다는 최근 몇 년 동안 느끼고 기억하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마치 아직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기억과 같은 이야기들. 그 이미지는 추상적이지만 좀 더 가깝고 현실적인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성적으로 이미지를 만들거나 그리는 느낌 보다는 회상을 하듯, 시간여행과 같은 놀이처럼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런 시각적 탐구를 통해 나는 기억 자체에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업을 통해 그 생명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