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지도가 과거라면 도면은 미래다. 지도는 현실에 보이는 것을 기호로 압축해 놓은 이미지고, 도면은 미래의 이상향을 설계한 기호 이미지다. 한정원은 도면을 기초로 한 의 작업을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작가에게 도면이 단순히 기호 이미지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적 집약체다. “도면이 때로는 아우성처럼 들린다.”라고 말한 것처럼, 도면에는 지금까지의 축적된 인간의 경험과 더 나은 삶을 향한 가치관, 인간의 윤리의식, 편의성, 미학적 측면 등이 집약되어 있다.
오랜 시간 지속해온 한정원의 도면 작업에는 세 가지 눈길을 끄는 특징이 있다. ‘도시 도면 이미지의 차용’과 ‘여러 이미지의 중첩’, 그리고 ‘흐름을 만드는 선들의 등장’이다. 작가가 도시 도면을 차용하게 된 것은 그가 예술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조경학(造景學)을 공부하고 조경 디자이너로 종사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중첩은 그의 예술적 실험의 중심에 판화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의 시간과 형성된 시간, 조금씩 변천되는 시간들, 그리고 그 시간이 남긴 흔적들(상처, 사건)을 거듭 중첩하면서 층을 쌓는 것을 판화의 메커니즘을 통해 효과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품에는 ‘흐름을 만드는 선들’이 등장하는데, 이 선들은 인간의 움직임에 대한 욕구와 관련 있는 것으로, ‘길’을 상징하는 간접적인 방식의 선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신체 행동이 직접적인 방식의 선으로 표출되어 ‘에너지’의 흐름을 발산하는 표현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