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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준(b.1973) Hyung-jun Joung(b.1973 Korean)

흙 놀이(경계에 서서…) 요약정보 및 구매

작품코드 1666004936
사이즈 24.2 x 33.4cm
재료 Clay acrylic gunny sack on canvas
장르 서양화
제작년도 2022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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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About
화가 정형준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흙놀이’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그에게 ‘흙’은 유희적으로 놀 수 있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서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철학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잡아 왔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흙’은 어린 시절 흙을 주물럭거리면서 형상을 만들고 놀았던 유년시절을 소환하는 기억의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형준은 흙을 그림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올이 촘촘하고 매트한 느낌의 캔버스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올이 성기고 표면이 거친 ‘마대’를 주로 사용한다. 마대는 단색화 작가인 하종현도 사용한 바 있지만, 캔버스 천에 비해서 천 조직이 성긴 모양이라서 어떤 재료를 사용할 때도 사실상 컨트롤 하기 힘든 부분이 더욱 많다. 그는 이런 마대에 혼합매체로 흙을 이용해 표면을 칠해 나가면서 여러 겹으로 레이어드 효과를 주는데, 결국에는 비정형적인 표면을 만들어 나간다. 과거의 작업에서 그는 이러한 비정형적 표면성을 만들면서 추상적 효과를 낳았는데, 이러한 비정형성에는 삶의 우연성과 무위적 태도가 반영되었다.

비정형적 표면
비정형(formless)에 주목했던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에게 이는 단순한 무형태적 속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삶을 이해하고 미술에서의 거대한 바위와도 같았던 모더니즘의 틀을 깨뜨리고자 하는 위반성 자체이자 위반적 태도로 읽혔다. 하지만 정형준에게 흙그림의 단색조 회화성, 그리고 그 표면을 지배하는 비정형성은 자신의 삶과 그가 자란 땅, 부모님이 손수 만들고 일구던 경작지, 과수원 등의 기억을 총체적으로 소환하는 역할을 해 왔다. 정형준의 <흙놀이> 연작들은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기억을 소환하는 동시에 흙을 가지고 노는 행위를 통해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기억을 소환하는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
비정형성으로 특징화 되었던 정형준의 그림들은 2020년 이번 전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작은 변화들이 감지된다. 이는 작은 형상들의 귀환이다. 추상적 표면 사이 사이로 벽화에서나 낙서화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선적 형상이 비정형적 표면을 뚫고 사이 사이를 누비기 시작한다. 이러한 형상들은 기하학적이고 균질적인 표면에 무질서한 역동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형상은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훨씬 더 쉽게 다가가게 한다. 특히 다양한 색채로 구성된 흙그림 위에서 배회하는 이러한 형상들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동차와 같은 인간 발전의 기본적 상징체부터 자연을 표상하는 나무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혼재한다. 이러한 나무의 형상과 이미지는 이번 전시에서 선(線) 조각으로 구체화 되었다.
정형준의 회화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작가 개인의 경험을 이미지로 그려내고 화면을 채워나가고 선과 면으로 끊임없이 층위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일상적 일기를 형상으로 써 내려간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정형준의 행위는, 거의 모든 작품을 <흙놀이>로 부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기에, 어떤 행위에 천착하는지를 상징화하는 부제들을 등장시킨다. 우리는 그의 <흙놀이> 그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러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는지, 그의 삶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의 감정은 어떠한지를 읽어내릴 수가 있다. 가령, 과거의 작품에서 그는 결혼, 가족, 여행, 사랑 등과 같은 삶의 변화를 부제를 통해서 밝힌 바 있고 우리는 작은 이미지의 형상을 통해서 이를 알 수가 있다.

흙의 상징적 의미
정형준의 작업에서 흙은 소재나 재료의 성격을 넘어서서 주제 그 자체이다. 그에게 흙은 과수원을 경작하고 땅을 일구었던 어머니의 노동을 상징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 전시되고 있는 작품인 <흙놀이(어머니와 8남매 II)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어머니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과수원 농사로 자식들을 키우고 가계를 이끌었다. 어머니의 노동은 단순한 일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가족을 지켜내려는 삶의 태도 자체를 상징한다. 이는 정형준이 제작했던 <뭍에서 섬을 그리다, 엄마 따라하기> 영상 작업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는 일하시는 ‘엄마’의 행위를 그대로 따라 하고 또 모방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용하고 지켜나가는 어머니의 삶의 태도까지도 배워나간다. 그 어느 곳보다 땅에서 보냈을 시간이 더욱 많았을 어머니의 모습은 그에게 ‘흙’ 그 자체이면서 삶의 수행성 자체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흙놀이를 하면서 성장해 왔던 것처럼, 어머니는 밭에서 일하면서 단순하게 ‘일’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사다난한 삶의 무게와 어려움을 흙을 통해 마음 수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형준에게 ‘흙’은 농부가 땅을 일구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화가 스스로 표현하고 수행성을 보여준다. 그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아니지만 부모님이 과수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거나 농부로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영상 안에 담아내는데, 이는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나 농부로서 일하는 행위가 서로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적 태도’로서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중 그는 <섬으로 떠나는 여행>(2020) 영상 작업에서 과수원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서로 병치시켜 자연을 정성껏 가꾸는 행위와 그림을 그리는 행위의 상징성을 서로 연결시켜 보여준다. 과수원에서 떨어졌거나 상품 가치가 없거나 먹을 수 없는 상태의 과일들을 버리는 행위가 영상에 나타나는데, 과일을 제대로 가꾸고 만들어내는 농부의 모습은, 성실하고 끈기 있게 일하는 자기수행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의 <흙놀이>는 유희성에 그치지 않고 삶의 태도와 주변을 향한 철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흙, 다양한 접착제, 다양한 도구, 붓 등을 이용한 그의 물질적 그림 그리기는 마대를 사용한 매트한 느낌의 탈물질적 표면성을 통해서 가장 정신적 차원을 구현한다. 작가는 “말랑거리는 흙의 촉각적 감각 활동”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데, 이는 붓을 이용한 유화에는 비유할 수 없는 촉지적 감각으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란, 보는 것일 뿐 아니라, 도자와 조각처럼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형상을 만들고 다듬어 나가는 형상의 원초적 의미에 다가간다.

정형준의 흙 회화
라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urg)는 1953년경 <(존 케이지를 위한) 흙 그림(Dirt Painting (for John Cage))>을 제작했고, 앤디 워홀(Andy Warhol)은 1978년 <산화 회화(Oxidation Painting)를 제작했다. 두 작품 모두 회화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도 회화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재료의 속성으로 정통 추상회화의 숭고성에 반하는 그림으로 보인다. 라우센버그의 경우 그는 나무 상자 안에 흙과 부식토를 이용해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달라지는 비정형적 추상회화를 제작했고, 앤디 워홀은 추상화가였던 잭슨 폴록을 향한 패러디적인 작품으로 캔버스에 구리 성분의 페인트가 공기와 만나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추상 작업을 제작했다. 두 작품 모두 두 거장의 대표작품은 아니나, 비정형성을 통해 전통에 반하는 위반적 작업을 표현했다. 정형준의 경우도 추상이든 반(半) 추상 회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흙 회화 자체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재료이다. 특히 그의 <흙놀이> 표면은 균형과 균열, 선과 면, 형상과 비형상의 끊임없는 긴장감과 이완이 흐르는 리듬의 유희적 공간으로, 일견 벽화로 보이기도 하고 작가의 고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바람의 리듬, 수많은 섬의 형상과 잔재들로 보인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작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봄, 12월 등과 같은 계절의 변화,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의 표현 등은 그림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운율처럼 서로 속삭이는 형상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즉,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여러 감각은 선과 면이 만나 소리를 내는 것처럼 춤을 추는 듯하다. 특히 2020년 신작에서 정형준은 마대의 평면성에 천착하지 않고 마대를 서로 겹치게 하거나 접힌 부분들을 만들어 내어 회화의 내적 평면성을 탈피하려는 실험성을 시도한다. 이는 일루전을 만들기도 하지만 제주의 돌담이나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는 형상성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은 점차 제주의 풍경을 담은 ‘섬’의 형상, 섬 자체가 되어 간다.

정형준의 ‘섬으로 떠나는 여행’
“저 운하들 위에서/ 잠들어있는 배들을 바라보렴./ 원래부터 방랑자의 기질을 가진 배들을..../ 지는 해들이 / 벌판을, 운하를, 도시 전체를 / 수선화 빛과 황금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세계는 뜨거운 햇살 안에서 잠들어 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정연한 아름다움...
이 시 구절은 샤를 보들레르가 ‘여행에의 초대( L'Invitation au Voyage)’에서 표현한 마지막 부분이다. 정형준의 <흙놀이> 작업들을 보면서 나는 보들레르의 ‘여행에의 초대’라는 이 시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프랑스인인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쓴 <섬>이라는 에세이가 생각났다. 물론, 정형준에게 섬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주도의 재개발로 인해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땅을 지켜내면서 손수 제주의 돌로 집을 지었다. 부모님의 제주도 집 벽을 연상시키는 제주 돌의 추상적 이미지는 정형준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형상들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일상적 기호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섬들의 풍경을 통해서, 정형준의 섬은 단순히 고향 제주도로의 여행이라기보다는 나에게는 장 그르니에의 ‘섬’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일차적 의미로서의 제주도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정형준에게 ‘섬’은 그의 삶을 반추하게 만들어, 자신을 성장시켜 주면서, 생각의 깊이를 계속해서 더해나가게 하는 마음속의 섬, 생각하는 섬, 관조하는 섬, 철학 하는 섬의 의미가 더해진다. 장 그르니에가 섬을 통해서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의 진부한 모습에서 의미와 성찰을 다룬 것처럼, 정형준의 ‘섬으로 떠나는 여행’은 고군분투하는 일상적 삶을 다시 한번 관조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행위에 다다르게 한다. 정형준은 “만지는 과정만으로도 촉각을 일깨우며, 시시각각 변하는 덩어리에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도시 속에서 잃어버리는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행위이자 흙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려보는 기억의 섬으로의 여행이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 자체가 결국 ‘섬’을 상징하며, 정형준의 말대로 작가는 “흙으로 섬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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