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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비율로 이상적인 위치에 자리한 화려한 이목구비와 고전주의 시대의 예술작품 속에서만 존재할 것만 같은 하얀 톤의 피부를 가진 비현실적인 몸매의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의 몇 달치 월급으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사치품들,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스포츠카들, 봉건사회 영주들의 성에 비견되는 크고 호화로운 주택들.
오늘날 우리가 이미지 과잉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는 데에 이견을 가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약 12억장의 이미지가 스마트폰에 의하여 생성되고 있으며 하나의 플렛폼에 단 하루 동안 업로드 되는 사진의 숫자만 해도 1억여 장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한대로 생성‧복제‧확산하며 우상화 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선망하고 동경하고 질투하며 바라볼 뿐인 이러한 이미지들에 대하여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실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적어도 실증적인 관점에서 진실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진실이 아니다. 도대체 세상에 실존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상 같은 이미지들의 진위에 대한 의문은 그다지 녹록치 못한 상황 속에서 창작활동을 연명 해오던 나에게 하나의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몇 달치 월급으로도 구매는 커녕 실물을 확인하기조차 힘든 운동화는 절대적 다수의 관점에서 그저 신기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접 확인하지 않았을 순간까지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카메라의 각도, 조명의 상황, 강조하기 위한 구도 등 이미지 생산자의 개입에 의하여 얼마든지 현실적인 이면들을 은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에 기반을 두어 우리가 바라보는 우상화된 이미지들은 어디까지나 진실을 반영한 가상공간 속의 왜곡된 그림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작금에 대두되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인 신용카드 중독, 명품을 찾는 10대 학생들, 카푸어, 사이버 성범죄 등은 모두 이러한 우상화된 이미지의 환영이 무리하게 현실의 물건으로 실체화 되는 순간 발생한 일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 백남준은 자석의 자기장을 이용하여 TV의 영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티비에서 출력되는 이미지를 왜곡시켰다. 물리적인 간섭으로 가상세계 속의 우상을 공격하고 전복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구적인 예술가의 공격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상세계는 여전히 그 세를 무한히 확장해가며 무한대에 가까운 비현실 속의 영토를 이용하여 현실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백남준이 보여주었듯 찰나의 순간 속에서 영원히 견고할 것 같은 이미지들은 매우 연약하고 물렁한 이면을 가지고 있다. 출력시스템에 대한 약간의 물리적 간섭, 명령어의 작은 실수, 시스템 상의 사소한 허점 하나에도 마치 파쇄기에 출력물이 잘려 나오듯 이미지는 파괴되고 붕괴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현실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미지의 연약하고 취약한 본질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약한 이면에는 어떠한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나의 작업은 신기루 같은 이미지의 가죽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는 근육과 혈관들을 드러내는 과정을 담아내는 것에 있다. 이미지에서 파생된 색으로 이루어진 무질서한 수평선이나 바코드모양의 패턴, 기하학적인 도형들의 불규칙한 나열들을 이용하여 나타낼 수 있는 수많은 조형적 조합들은 추상화의 그 것만큼이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