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흘려버리기 쉬운 일상 속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이를 나만의 시각과 잔잔한 웃음을 섞어 표현하고 있다. 내 작품의 주제가 되는 일상은 대구-서울-동경-다시 대구로 이어지는 지금껏 내가 살아온 현대 도시의 일상이다. 도시를 옮겨가고 나라가 바뀌어도 대도시라고 하는 시스템은 다들 비슷비슷 한데 여기서 보게되는 아이러니한 장면들은 도시가 가지는 특질인지, 사람이 다수 모이게 되면 생겨나는 인간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 생활 속에서 인간이 개성과 자유로움을 잃고 대도시의 시스템과 룰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계적으로 행동하며 점점 사물화 하는 상황을 우리는 매일 보며 산다. 작품에 등장하는 구겨지거나 접혀서 놓여있는 옷가지와 소지품들(사물)은 결국은 우리의 모습이다. 때로는 만원 전철을 타고 출퇴근과 등하교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옷 서랍장에 가득 찬 옷 꾸러미에 비유되어 그려진다. 승객을 잔뜩 태우기 위해서 역무원이 사람들을 꾸깃꾸깃 눌러 넣고 있는 것은 전철이 아닌 커다란 옷장이다. 또한 사각형의 쇠로 만든 온 갖 탈 것들을 속이 꽉 찬 통조림에 비유해서 그리기도 한다. 인간군상을 한번에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인 대중교통수단을 소재로 즐겨 그린다.
2017년 한국에 귀국한 이후로는 줄곧 상자를 소재로 하여 도시의 일상을 판화로, 설치 작품으로 그리고 페인팅으로 그리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효율적으로 많은 인구를 수용(수납) 할 수 있도록 네모난 상자와 같은 규격화 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이 상자 공간들은 도시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겠다고 선택한 ‘자의’와, 소시민에게는 주거지에 대한 아주 좁은 선택지 밖에 제공하지 않는 ‘시스템의 타의’가 혼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상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으로, 좋든 싫든 우리의 일상을 담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예전부터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을 종종 그려왔다. 그것이 내가 겪어온 도시생활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2월부터 계속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도 나로써는 작업실에 찾아오던 지인이 없다는 것과 모임들이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 적어도 작업실 안에서는 평소와 같은 생활을 했다. 혼자 작업을 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거나 쉬면서 뉴스, 정보를 찾아보고, 혼자서 밥을 먹고, 또 작업을 한다. 혼자 고요히 작업하는 시간은 항상 내가 ‘나’로 가득히 채워지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충만해지는 시간들이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타의적이었지만 묵직하게 경험하게 된 것 같다. 나를 고립시키기도, 충만하게도 하는 도시의 상자들. 나의 작품들을 통해서 지금도 변화해 가는 중인,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돌아보고 있을 사람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