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디지털 작업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그동안 에어브러시 기법을 이용했던 평면작업은 디지털 매체를 만나 입체화 되고 애니메이션화 된다. 정지된(still frame) 아날로그 회화에 생명성을 불어 넣는 것이다. 꿈속을 산책하듯 카메라의 앵글은 가상의 공간을 유영한다. 저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는 사라져 가는 옛 동네를 산책한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담, 알록달록한 차고 셔터문, 흥미로운 형상을 한 도시가스관, 간혹 어린 아이의 낙서 등,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새로운 그림을 본다. 우리는 잊혀져 가는 공간을 그렇게 기억해 간다.
3D 만화 캐릭터의 형태로 입체화 된 가족(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아들, 딸 그리고 강아지)들이 팡파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각자의 악기와 마이크를 들고 노래 부르고 연주 한다. 누구나 항상 들을 수 있는 행복한 가족들의 행진곡이다. 살아있다. 활기가 넘친다. 유머러스하다. 익살스럽다. 화기애애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이것이 즐거움이고 행복한 삶의 모습이다. 소란스러움이 아닌 행복한 삶의 이야기가 동네에 울려 퍼진다.
*** 전시장 한구석에는 마네킹들이 불빛 찬란한 네온사인 아래서 테크노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부서진 마네킹, 팔다리가 없는 몸이 분리된 마네킹들이 분리 수거된 쓰레기더미에서 밤새 춤을 춘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양하게 쓰이다가 수거된 마네킹 조각들은 오늘 밤 만남을 만끽한다. 어쩌면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생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파티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안하지만은 않다. 전시장에 설치된 마네킹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언케니(uncanny)하다. 한 때 그들은 어느 백화점 쇼윈도에 화려한 의상을 걸쳐 입고 데뷔했던 소비시장에서 주목받는 주연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삶의 궤적을 밟게 된다. 사물로 태어난 마네킹, 그들도 영혼을 가지고 있을까?
언젠가 도심 옷가게에서 버려진 마네킹 조각들을 수거해와 작업실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홀로 만의 독백은 작가만의 상상의 세계인 풍경화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상상은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고 인형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에로스적 대상물이었다. 어린아이가 잠자는 시간, 사랑스런 인형공주를 만났다. 때론 어여쁜 드레스를 입은 나팔꽃 인형들이 책상 서랍 속에서 나와 꿈꾸는 공간에서 춤을 춘다. 꿈은 현실보다 감동적이고 현실보다 아름답다. 간혹 소설이나 영화의 스토리는 우리 주변에서 두렵고 잔인하게 현실화되기도 한다. 장작을 깎아서 만든 목각인형 '피노키오 이야기'는 애정을 갈구하며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하는 우리 욕망을 대신하여 보여준다. 영화 'AI(인공지능)'에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 로봇은 폐기물 처리장에 버려진다. 현실 속 우리는 유용성이 끝나 폐기 처분되는 아이 로봇이기도 하고, 아이 로봇을 버리는 매정한 인간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유기견 처럼 버려진 마네킹들이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마네킹들의 몸짓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호흡, 따뜻한 피와 살을 지닌 인간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목도한다. 이미 살과 피를 지닌 우리 인간도 여전히 무언가를 욕망한다. 완전체를 꿈꾼다. 불멸을 욕망한다. 광포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용도가 폐기 처분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마네킹과 인간의 실존은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은가?